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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예정작

영화 가족여행, 모두의 가족인데 왜 돌봄은 한 사람의 몫이 됐을까

by 가가둥01 2026. 9. 1.

가족은 모두 다섯 명인데, 왜 돌봄의 책임은 한 사람에게 몰려 있을까. 영화 <가족여행>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베트남 참전용사 시아버지, 꿈만 좇는 남편, 자기 세계에 빠진 딸과 함께 살아가는 며느리 영주가 갑작스럽게 가족여행을 제안하면서 시작한다.

겉으로 보면 낡은 승합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는 좌충우돌 로드무비다. 하지만 이 가족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즐거운 휴가 계획이 아니다. 가족의 생계와 돌봄을 사실상 혼자 떠안아온 영주가 더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버티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래서 <가족여행>에서 중요한 질문은 가족이 서로 사랑하느냐보다 조금 더 현실적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는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가.

기본 정보

감독 정종섭, 김정태
주요 출연 이휘향, 서영희, 김정태, 남경읍, 홍정민, 박상면
국내 개봉 2026년 9월 30일
러닝타임 108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가족, 드라마
제작 스튜디오킬러웨일, 클엔터테인먼트
배급 이놀미디어

다섯 식구인데 왜 영주 혼자 가족을 떠받치고 있을까

서영희가 연기하는 영주는 이 가족의 며느리이면서 사실상 집 전체를 움직이는 사람이다. 남편 창욱은 영화감독의 꿈을 놓지 못하고 있고, 시아버지 만철과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 순임을 챙기는 일도 영주의 몫이다. 사춘기 딸 윤진까지 돌봐야 한다.

그러던 중 보호센터에서 더 이상 순임을 맡기 어렵다는 통보가 온다. 그 순간 순임을 앞으로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다시 가족 안으로 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순임이 영주 혼자만의 가족이 아니라는 점이다. 순임에게는 남편도 있고 아들도 있다. 그런데 실제 돌봄의 문제를 가장 먼저 떠안는 인물은 며느리 영주다.

이 설정 때문에 <가족여행>의 가족 문제는 단순히 서로 사이가 나쁘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 모두에게 관련된 책임이 어느 순간 특정한 사람의 의무로 굳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부산으로 떠나는 여행은 휴가가 아니라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시간이다

영주는 순임의 생일을 기념해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여행처럼 보인다.

하지만 출발부터 분위기는 평범한 휴가와 다르다. 가족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하면서도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고, 여행에는 쉽게 꺼내지 못한 목적과 비밀이 감춰져 있다.

그래서 부산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이 가족이 미뤄왔던 문제와 마주해야 하는 종착점처럼 기능한다. 평소에는 각자의 방과 일상으로 흩어질 수 있었던 가족이 여행을 시작하면 같은 차 안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가족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할 곳이 사라지는 셈이다.

낡은 승합차는 움직이는 집처럼 보인다

<가족여행>에서 다섯 식구는 급하게 빌린 낡은 승합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로드무비에서 자동차는 인물을 다음 장소로 옮기는 이동수단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조금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집에서는 방문을 닫거나 밖으로 나가면 서로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승합차 안에서는 그럴 수 없다. 몇 걸음만 움직여도 다시 가족의 얼굴과 마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승합차는 이 가족이 살아온 집을 더 좁게 압축한 공간처럼 보인다. 운전하는 사람, 옆에 앉는 사람, 뒤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모두 한 공간에 갇힌다.

차가 앞으로 달리는 동안 가족에게 숨겨진 문제도 함께 따라간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서로에게 감춰온 이야기를 더 이상 피하기 어려워지는 구조가 로드무비와 잘 맞아떨어진다.

순임의 치매는 가족의 기억까지 흔든다

이휘향이 연기하는 순임은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다. 하지만 순임을 단순히 돌봐야 하는 환자로만 바라보면 이 영화가 가진 가족 이야기의 한 축을 놓치게 된다.

공개된 설정에 따르면 순임은 과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새벽부터 치킨집을 운영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다른 가족에게 돌봄을 받아야 하지만, 한때는 오히려 가족을 떠받쳤던 사람이었던 셈이다.

이 변화는 돌봄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던 시간이 지나면 자식 세대가 부모를 돌봐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문제는 그 책임이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특정 사람에게 몰릴 때다. 순임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현재의 돌봄 부담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정종섭 감독 자신의 가족 경험에서 시작된 이야기

<가족여행>은 특정 사건을 그대로 옮긴 실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출발점에는 정종섭 감독의 실제 가족 경험이 있다.

정종섭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가 뇌혈관성 치매 판정을 받은 뒤 어머니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주치의에게 언젠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나온 삶과 어머니와의 시간을 돌아보게 됐고, 그 경험이 시나리오의 출발점이 됐다.

이 배경을 알고 보면 영화 속 순임과 가족의 상황을 단순한 극적 장치로만 보기 어렵다. 치매라는 소재를 이용해 눈물을 만드는 것보다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가족이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선택과 감정에 더 가까이 가려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 매일 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지점도 바로 그 차이에 있다.

창욱은 왜 가족 안에서 가장 철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김정태가 직접 연기하는 창욱은 영화감독의 꿈을 좇고 있지만 가족 안에서는 믿음직한 가장과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영주가 현실적인 생계와 가족의 문제를 떠안고 있는 동안 창욱은 자신의 꿈을 붙들고 있다. 꿈을 갖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그 꿈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가 대신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창욱이라는 인물은 영화감독 지망생이라는 코믹한 설정보다 개인의 꿈과 가족에게 져야 할 책임 사이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특히 김정태가 실제로 배우에서 감독으로 영역을 넓힌 시점에 꿈만 좇는 영화감독 창욱을 직접 연기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비를 만든다.

김정태의 감독 데뷔가 이 영화와 묘하게 겹치는 이유

김정태는 이번 작품에서 정종섭 감독과 공동 연출을 맡았다. 영화 연출은 <가족여행>이 처음이다. 동시에 창욱 역으로 출연해 배우와 감독을 함께 맡는다.

오랫동안 카메라 앞에서 연기해온 배우가 이번에는 장면 전체를 바라보는 연출자의 위치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변화가 크다.

그가 연기하는 창욱도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실제 김정태와 극중 인물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감독 데뷔작에서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을 직접 연기한다는 점은 자연스럽게 겹쳐 보인다.

다만 이 작품의 가치는 ‘천만 배우의 감독 도전’이라는 이력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배우로서 익혀온 사람과 감정에 대한 감각을 가족 전체의 관계를 보여주는 연출로 얼마나 확장했는가다.

이휘향의 첫 스크린 주연이 순임과 만난다

순임을 연기하는 이휘향에게 <가족여행>은 오랜 연기 경력 끝에 만난 첫 스크린 주연작이다.

순임은 가족 모두의 여행을 움직이게 만드는 인물인 동시에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 역할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치매 환자의 외형적인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혼란 속에서도 이 사람이 오랫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사람이라는 설정까지 연결하면 순임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노인이기 전에 가족의 역사를 가장 오래 품고 있는 인물이 된다.

그런 점에서 오랜 시간 수많은 역할을 쌓아온 이휘향이 순임을 맡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캐스팅 이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만철과 윤진까지 모두 자기만의 여행을 하고 있다

남경읍이 연기하는 시아버지 만철은 베트남 참전용사 출신이고, 홍정민이 맡은 딸 윤진은 뱀파이어 코스프레에 빠진 사춘기 소녀다.

두 사람은 얼핏 보면 가족영화에 웃음과 개성을 더하기 위한 캐릭터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목과 홍보 문구가 강조하는 것은 이 가족이 같은 목적지를 향하면서도 서로 다른 속마음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같은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순임을 어머니로 바라보는 사람과 시어머니로 바라보는 사람, 할머니로 바라보는 사람은 각자 관계의 시간이 다르다.

그래서 부산으로 가는 물리적인 여행은 하나지만, 감정적으로는 다섯 사람이 각각 다른 여행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웃기면서도 불편해야 하는 가족 코미디

<가족여행>에는 코미디로 활용할 수 있는 설정이 많다. 꿈만 좇는 남편, 뱀파이어에 빠진 딸, 낡은 승합차에 다섯 식구가 올라탄 상황 자체가 여러 소동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한 가족 코미디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웃음 뒤에 있는 불편함을 지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영주가 가족을 돌보다 지쳐 있다는 사실, 순임의 치매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가족들이 앞으로 돌봄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몇 번 웃는다고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코미디가 필요한 이유는 무거운 현실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쉽게 말하기 어려운 가족의 문제를 끝까지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완충 장치에 가까울 것이다.

가족이라는 말은 책임을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을까

가족영화에서는 종종 갈등 끝에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가족여행>이 다루는 돌봄의 문제는 마음만 확인한다고 사라지는 종류가 아니다.

누군가는 실제로 순임을 돌봐야 하고,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며, 각자의 삶도 계속 이어가야 한다. 모두가 가족을 사랑하더라도 시간과 체력, 경제적인 여건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이 가족이 다시 화목해질 수 있을까’가 아닐 수 있다. 한 사람이 감당하던 가족의 책임을 이제는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훨씬 현실적인 질문이다.

2026년 9월 30일 개봉하는 <가족여행>은 다섯 사람이 같은 승합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함께 가야 할 목적지는 부산보다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는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여행이 끝난 뒤에도 이들이 계속 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변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