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개봉 예정작

영화 가능한 사랑,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도 사랑이 될 수 있을까

by 가가둥01 2026. 8. 31.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까지 진짜일까. 그 사람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기록하면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안전한 자리에서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될 뿐일까.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부부와 그들을 촬영하려는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를 만나게 하며 이 불편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버닝> 이후 8년 만에 나온 이창동 감독의 장편 신작은 노동과 계급을 이야기하면서도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서로 너무 다른 조건에서 살아온 네 사람이 가까워지면서 각자가 믿고 있던 삶과 관계, 욕망이 흔들린다. 그래서 제목 속 '가능한'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서로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은 가능한가. 영화는 바로 그 가능성과 한계를 들여다본다.

기본 정보

감독 이창동
각본 이창동, 오정미
주요 출연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국내 극장 개봉 2026년 9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2026년 11월 6일
러닝타임 164분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드라마
촬영 김지용
음악 정재일
제작 파인하우스필름, 어나니머스 콘텐츠, 나우필름
주요 영화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제64회 뉴욕영화제
베니스 수상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 국제비평가연맹상

두 부부는 같은 세상에 살지만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영화의 한쪽에는 해고 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이 있다. 설경구가 연기하는 호석은 대량해고와 파업, 강제 진압이 남긴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전도연이 맡은 미옥 역시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며 남편과 함께 그 후유증을 견디는 사람이다.

반대편에는 조여정이 연기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조인성이 맡은 남편 상우가 있다. 예지는 해고 노동자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려 하고, 그 작업을 통해 호석과 미옥에게 다가간다.

네 사람이 사는 사회는 같지만 생활의 조건은 크게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 노동은 하루의 일상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관찰하고 기록해야 할 사회적 문제다.

이 차이는 단순히 돈이 많고 적다는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한쪽이 살아내야 하는 현실을 다른 한쪽은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 부부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든다.

예지는 왜 해고 노동자를 '사랑하려고' 할까

공개된 예고편에서 예지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두고 호석과 미옥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가능한 사랑>의 제목과 직접 연결되는 중요한 문장처럼 보인다.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의 고통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다고 해서 상대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촬영이 끝나면 카메라를 든 사람은 자신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지만, 카메라 앞에 있었던 사람에게 그 현실은 계속된다.

그래서 예지의 말에는 선한 의도만큼이나 불편한 질문이 따라붙는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그 사람의 삶을 이해했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과 뒤에는 처음부터 같은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

<가능한 사랑>에서 다큐멘터리라는 설정은 단순히 네 사람을 만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무엇을 찍을지 선택할 수 있다. 어떤 말을 영화에 사용할지, 어디에서 촬영을 멈출지도 결정한다. 반면 촬영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위치에 놓인다.

이 관계에는 처음부터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타인의 아픔을 이미지와 이야기로 만드는 순간 윤리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이 오랫동안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극영화로 만들기를 망설였다는 사실도 이 문제와 연결된다. 실제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그것을 다시 극영화로 만드는 것이 옳은가라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예지가 가진 고민과 영화를 만드는 이창동 감독 자신의 고민이 서로 비치는 구조라고도 볼 수 있다.

호석에게 해고는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호석을 단순히 직장을 잃은 사람이라고 설명하면 이 인물이 가진 시간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대량해고와 파업, 진압은 특정한 시점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그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사건이 끝난 뒤에도 삶에 흔적을 남긴다. 직장을 잃은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감각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이야기를 10여 년 전에도 영화로 만들려다 중단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노동의 문제가 더 중요해졌다고 판단해 다시 작품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호석의 이야기는 과거의 특정 노동분쟁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일자리를 잃은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한 사람의 삶에 더 가깝다.

미옥은 '해고 노동자의 아내'라는 이름보다 더 큰 사람이다

전도연이 연기하는 미옥 역시 호석의 아내라는 관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독립적인 인물이고, 남편이 겪은 사건의 후유증을 곁에서 함께 견뎌온 사람이기도 하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큰 상처를 겪으면 그 영향은 당사자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배우자 역시 생활과 감정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옥의 삶 전체가 호석의 고통을 보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개된 영화의 설정에서 중요한 것도 두 부부가 가까워지면서 미옥 자신의 욕망과 감정 역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옥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헌신적인 아내인가보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상처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 자기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가다.

상우의 말은 두 부부 사이에 있는 경계를 드러낸다

예지가 호석과 미옥에게 가까워지려 할수록 상우는 두 부부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식한다.

이 반응을 단순히 냉정하거나 이기적인 태도로만 볼 필요는 없다. 실제로 두 부부 사이에는 쉽게 지울 수 없는 생활 조건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친해지고 함께 밥을 먹고 여행한다고 해서 경제적 조건과 살아온 경험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까워질수록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가 더 선명해질 수도 있다.

상우는 그 불편한 현실을 말로 드러내는 인물에 가깝다. 사랑이나 연대라는 감정이 계급의 차이를 정말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이다.

왜 이창동 감독은 10년 넘게 이 이야기를 놓지 못했을까

이창동 감독은 대량해고와 파업 진압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시기에 이미 해고 노동자를 소재로 한 영화를 구상했다.

하지만 실제 노동자의 삶과 고통을 극영화로 바꾸는 것이 과연 필요한지 확신하지 못해 당시에는 제작을 중단했다. 이후 공동 각본가 오정미의 제안으로 한 부부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부부를 마주하게 하는 현재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독이 이 이야기로 돌아온 이유도 달라졌다. 기술 발전과 산업 변화로 안정적인 노동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가 됐고, 노동이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질문할 필요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가능한 사랑>은 과거의 노동 문제를 복원하는 영화라기보다 일이라는 것이 점점 불안정해지는 시대에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어디에서 오는지 묻는 영화에 더 가깝다.

노동이 사라지는 시대에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 남을까

해고는 단지 월급이 끊긴다는 뜻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직업을 통해 자신을 설명해온 사람에게 일자리를 잃는 것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사라지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더구나 기술의 발전과 산업 구조의 변화는 과거 특정 공장이나 기업에서 벌어졌던 문제가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의 일이 될 가능성을 만든다.

이창동 감독이 지금 다시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동이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해온 사회에서 노동 자체의 형태가 바뀐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야 할까.

이 질문은 호석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과 일을 잃은 사람, 그들을 기록하는 사람까지 모두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다시 묻게 된다.

'가능한 사랑'이라는 제목은 왜 확신보다 질문처럼 들릴까

제목이 단순히 <사랑>이었다면 영화의 방향은 훨씬 명확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그 앞에 '가능한'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가능하다는 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능성은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고, 노력해야만 겨우 닿을 수 있는 상태다.

두 부부 사이의 관계 역시 그렇다.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살아온 조건과 욕망의 차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은 노동과 자본 같은 힘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더라도 그 안에서 자유를 향해 움직이려는 욕망이 존재하며, 그 욕망 자체가 하나의 사랑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제목에서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연애 감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의지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에 가깝다.

164분이라는 긴 시간은 네 사람의 거리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다

<가능한 사랑>의 러닝타임은 164분으로 이창동 감독의 장편 가운데서도 긴 편에 속한다.

두 부부의 관계를 단순한 사건 몇 개로 빠르게 설명하기보다 네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오해하고, 가까워졌다 다시 거리를 느끼는 과정을 충분한 시간 안에서 보여주는 구조와 연결된다.

이창동 영화에서 인물의 변화는 대개 하나의 결정적인 대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일상의 행동과 침묵,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 같은 작은 움직임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드러난다.

네 명 모두에게 각자의 삶과 욕망을 부여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사회 문제를 대표하는 인물로 단순화하지 않고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베니스 은사자상보다 더 눈여겨볼 국제비평가연맹상

<가능한 사랑>은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공개된 뒤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이창동 감독이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이후 24년 만에 다시 베니스에서 주요 경쟁 부문 트로피를 받은 것이다.

동시에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이 선정하는 FIPRESCI상도 받았다. 베니스 공식 부대상 가운데 경쟁 부문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된 결과다.

수상 자체를 작품의 완성도를 자동으로 보증하는 기준으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공개 전 막연한 '기대작'이었던 단계에서 벗어나, 실제 영화가 국제 무대에서 공개되고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이제 글에 반영할 만한 사실이다.

이창동 감독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도 한국 감독 최초로 TIFF 에버트 감독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다만 이 상은 <가능한 사랑> 한 편에 주는 경쟁상이 아니라 감독의 영화적 성취와 공로를 기리는 상이라는 점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전도연과 설경구의 재회는 과거 필모그래피보다 현재의 인물로 봐야 한다

전도연은 <밀양> 이후 이창동 감독과 다시 만났고, 설경구는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에 이어 세 번째로 이창동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오랜만의 재회라는 사실만으로도 영화 팬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작품의 핵심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명장면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배우들이 현재의 미옥과 호석을 어떻게 만들어냈느냐다.

특히 두 배우는 함께 살아온 부부를 연기한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노동투쟁이라는 큰 사건뿐 아니라 그 이후 오랫동안 이어진 일상의 시간이 축적돼 있다.

조인성과 조여정 역시 단순히 대조적인 '부유한 부부'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균열을 가진 인물이다. 네 배우가 모두 한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각자의 이유를 가진 사람으로 보일 때 영화의 관계도 더 복잡해진다.

결국 이 영화가 묻는 것은 타인의 삶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가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경험할 수 없다. 가난을 바라보는 것과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은 다르고,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실제로 일자리를 잃는 것도 다르다.

그렇다고 서로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상대와 같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바로 그 모순 때문에 <가능한 사랑>이라는 제목이 흥미롭다. 영화는 사랑이 모든 계급 차이와 상처를 해결한다고 쉽게 말하기보다, 그 차이가 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가를 묻는다.

2026년 9월 23일 극장에서 먼저 공개되고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가능한 사랑>은 노동과 계급에 대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바라봄에 대한 영화다. 누군가는 카메라 앞에 서고 누군가는 카메라를 든다. 누군가는 고통을 살아내고 누군가는 그것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 두 위치 사이의 거리를 완전히 없애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이 제목에서 말하는 '가능성'은 그 거리를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알고도 상대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보려는 선택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