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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예정작

영화 <97 혜자, 표류기> 1997년생 계약직 노동자 혜자의 서울·부산 생존기

by 가가둥01 2026. 9. 4.

반지하에서 오피스텔로.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절박한 현실이 담겨 있다. 영화 <97 혜자, 표류기>는 서울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1997년생 김혜자의 하루와 이동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보험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혜자는 더 나은 집과 안정적인 직장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좀처럼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강남 오피스텔로 옮길 기회가 생기자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제목의 ‘표류기’는 이 영화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어디엔가 정착하고 싶지만 계속 다음 장소로 떠밀리는 사람, 계획을 세워도 현실에 의해 방향이 바뀌는 청년의 삶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여정 안에 담겨 있다.

기본 정보

감독·각본 정기혁
주연 정은지, 김주안
주요 출연 이혜, 우주영, 안도경 외
개봉일 2026년 9월 9일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22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제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정기혁 감독이 바라본 1997년생 노동자의 현실

정기혁 감독은 이 작품에서 거대한 사건보다 한 사람의 생활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주인공 김혜자는 1997년에 태어나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계약직 노동자다. 숫자 ‘97’은 단순한 제목 장식이 아니라 주인공이 태어난 해와 연결된다.

1997년은 한국 사회에서 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해다. 혜자가 그해 태어났다는 설정은 경제적 불안정이 일상이 된 세대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안정적인 직장과 자기 집을 원하지만 그 목표는 가까워 보이면서도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영화는 이런 현실을 거창한 사회문제 설명으로 풀어내기보다 혜자의 일과 대화, 이동을 따라가면서 보여준다. 그래서 한 청년의 개인적인 이야기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현실과 겹쳐진다.

김혜자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이유

김혜자(정은지)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보험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다. 반지하 생활을 벗어나 오피스텔로 옮기고 싶어 하고, 가능하다면 정규직이라는 조금 더 안정적인 자리에도 도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혜자는 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착하고 수동적인 청년 캐릭터와는 조금 다르다. 거친 사투리를 사용하고 감정을 쉽게 숨기지 않으며, 때로는 자신의 성격 때문에 직장에서 문제를 겪기도 한다.

이런 성격은 혜자를 완벽한 피해자로 만들지 않는다. 상황에 떠밀리면서도 자기 방식대로 버티고, 화를 내고, 다시 움직이는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관객은 혜자를 동정하기보다는 한 명의 구체적인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반지하에서 오피스텔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

혜자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지금 살고 있는 반지하를 벗어나 오피스텔로 이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소박함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집 한 칸 옮기는 일이 단순한 선택일 수 있지만, 혜자에게는 돈과 직장, 가족의 도움까지 연결된 문제다. 작은 주거 이동 하나를 위해 다른 도시로 내려가야 하고, 자신이 기대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

영화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표현은 단순히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기는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정적인 삶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혜자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계획에서 표류로

오피스텔로 옮기기로 결심한 혜자는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간다.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지만 집에 도착한 뒤 예상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고, 결국 엄마의 친구 희숙에게 연락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혜자의 계획은 조금씩 어긋난다. 돈을 빌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 끝날 것 같았던 일정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작품이 로드무비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목적지는 분명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결과보다 이동 과정에서 무엇을 만나고 어떻게 흔들리는가에 있다.

희숙과 혜자, 혈연 밖에서 만들어지는 관계

혜자의 여정에서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엄마의 오랜 친구 희숙이다. 혜자가 원래 찾으려 했던 사람은 엄마였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희숙과 연결되면서 이야기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범위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항상 가장 가까운 것도 아니고, 혈연이 아니라고 해서 남인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는 필요할 때 의외의 사람이 곁에 남는 경우가 있다.

<97 혜자, 표류기>는 이런 관계를 지나치게 감동적으로 포장하기보다, 함께 움직이고 말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보여준다. 그 점이 오히려 혜자의 현실적인 삶과 잘 어울린다.

콜센터 노동이 보여주는 혜자의 하루

혜자가 일하는 곳은 보험사 콜센터다. 직접 고객을 마주하지 않지만 하루 종일 목소리로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공간이다. 감정을 통제하면서 전화를 받아야 하고, 자신의 상황과 상관없이 정해진 방식으로 응대해야 한다.

혜자의 거친 말투와 불같은 성격은 이런 노동환경과 계속 충돌한다. 단순히 캐릭터를 재미있게 만드는 설정이 아니라 혜자가 살아가는 방식과 직장의 규칙이 얼마나 맞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경제적인 문제와 감정노동, 불안정한 고용이 하나의 인물에게 동시에 겹쳐 있다는 점에서 혜자의 이야기는 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왜 제목은 ‘97 혜자, 표류기’일까

제목의 ‘97’은 주인공 혜자가 1997년에 태어난 인물이라는 사실과 연결된다. 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해에 태어난 세대가 성인이 되어 불안정한 노동과 주거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는 설정은 영화의 사회적인 배경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표류기’라는 단어는 혜자의 현재를 더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혜자는 분명 원하는 것이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를 계획한 방향으로만 보내주지 않는다.

서울과 부산 사이의 물리적인 이동뿐 아니라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반지하에서 오피스텔로, 불안정한 삶에서 안정된 삶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모두 하나의 표류처럼 겹쳐진다.

작은 목표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보여줄 때

첫 번째로 눈여겨볼 부분은 ‘오피스텔로 이사한다’는 작은 목표다. 영화는 거대한 성공이나 인생 역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집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옮기고 싶다는 목표 하나만으로도 지금 청년 세대가 마주한 노동과 주거 문제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두 번째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혜자의 움직임이다. 공간이 바뀔 때마다 혜자가 만나는 사람과 감정도 달라진다.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혜자와 부산으로 돌아온 혜자는 같은 사람이지만 조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정은지와 김주안을 비롯한 배우들의 생활감 있는 연기다. 이 영화는 거대한 사건보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어색한 침묵과 감정의 변화가 중요하다. 그래서 배우들이 인물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살아내는지가 작품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결국 <97 혜자, 표류기>는 한 청년이 집을 옮기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그 이동 안에 노동과 주거, 가족과 세대의 문제를 함께 담아낸다. 어디엔가 정착하고 싶지만 계속 흔들리는 혜자의 모습은 특정한 한 사람의 사정이라기보다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과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