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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오디세이, 오디세우스는 왜 전쟁이 끝나고도 10년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했을까

by 가가둥01 2026. 8. 27.

트로이 전쟁은 끝났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승리했고 이제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오디세이>에서 그 귀향에는 다시 10년이 걸립니다.

폭풍과 괴물, 신들의 방해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그보다 조금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전쟁에서 돌아오는 것과 전쟁 이전의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은 같은 일일까.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라는 기발한 계략으로 전쟁을 끝낸 영웅이지만, 바로 그 승리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까지 짊어집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긴 항해는 이타카라는 장소를 찾아가는 모험인 동시에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한 인간의 귀향처럼 보입니다.

기본 정보

감독·각본 크리스토퍼 놀란
주요 출연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앤 해서웨이, 로버트 패틴슨, 젠데이아, 샤를리즈 테론, 루피타 뇽오
국내 개봉 2026년 8월 5일
러닝타임 172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액션, 모험, 드라마
원작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촬영 호이트 반 호이테마
제작 싱코피, 유니버설 픽처스

놀란은 왜 3000년 된 영웅을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으로 바라봤을까

<오디세이>의 출발점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입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키클롭스와 세이렌, 키르케와 칼립소 같은 신화적 존재들을 만나고 인간의 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습니다.

놀란은 이 유명한 모험을 그대로 거대한 볼거리로 옮기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영화 속 오디세우스에게 트로이 전쟁은 끝난 과거가 아닙니다.

트로이 목마를 고안한 사람도 오디세우스입니다. 그의 지략은 그리스군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오디세우스에게 '영웅'과 '파괴를 만든 사람'이라는 두 얼굴이 겹쳐집니다.

전쟁을 끝낸 최고의 전략이 정작 그 전략을 만든 사람에게는 평생 빠져나오기 어려운 기억이 된 셈입니다.

트로이 목마는 승리의 상징일까, 오디세우스가 짊어진 상처일까

트로이 목마는 오랫동안 오디세우스의 지혜를 상징해왔습니다.

10년 동안 무너뜨리지 못했던 트로이를 힘이 아니라 속임수와 전략으로 함락시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놀란은 그 유명한 승리를 마냥 통쾌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누군가를 속여야 하고, 자신을 믿는 사람을 희생시켜야 하며, 성 안으로 들어간 뒤에는 또 다른 폭력이 이어집니다.

전쟁에서는 그것을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오디세이>에서 트로이 목마는 영웅을 탄생시킨 업적이면서 동시에 그 영웅이 고향까지 가져가야 하는 죄책감의 출발점처럼 기능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찾아가는 것은 이타카인가, 전쟁 이전의 자신인가

표면적인 목표는 단순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아내 페넬로페가 있고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으며 자신이 왕으로 있던 이타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을 떠난 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트로이에서 전쟁을 치른 시간이 10년이고, 다시 고향으로 향하는 여정에도 10년이 걸립니다.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돌아가야 할 장소는 그대로 존재하더라도 떠났던 사람은 더 이상 그대로일 수 없습니다.

오디세우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쟁 전의 남편과 아버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휘관, 동료들을 잃어가는 생존자가 한 사람 안에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질문은 점점 달라집니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에 도착할 수 있는가'보다 '이타카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다시 남편과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페넬로페의 기다림도 하나의 오디세이다

앤 해서웨이가 연기하는 페넬로페는 단순히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인물이 아닙니다.

오디세우스가 사라진 이타카에는 권력의 빈자리가 생겼고, 수많은 구혼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합니다.

페넬로페에게 기다림은 수동적인 시간이 아니라 버티는 시간입니다.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괴물과 폭풍을 상대하는 동안 페넬로페는 집 안에서 왕국의 붕괴와 압박을 견딥니다.

둘은 서로 다른 장소에 있지만 같은 문제를 겪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디세우스에게 귀향이 집을 찾아가는 일이라면, 페넬로페에게 기다림은 그가 돌아올 집을 사라지지 않게 지키는 일입니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찾는가, 아버지 없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가

톰 홀랜드가 연기하는 텔레마코스에게 오디세우스는 조금 다른 존재입니다.

페넬로페에게 그는 떠난 남편이지만, 텔레마코스에게는 제대로 기억할 수도 없는 아버지입니다.

오디세우스가 떠났을 때 텔레마코스는 너무 어렸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없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 그에게 위대한 왕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요구합니다.

이 상황은 텔레마코스에게 독특한 문제를 만듭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기 위해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한 아버지가 누구였는지를 먼저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텔레마코스의 여행은 오디세우스를 찾아가는 작은 모험인 동시에 아버지의 이름 밖에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성장 과정이 됩니다.

로버트 패틴슨의 안티노오스는 오디세우스가 비운 자리를 노린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하는 안티노오스는 페넬로페를 압박하는 구혼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인물입니다.

그가 노리는 것은 단순히 한 여성과의 결혼이 아닙니다.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왕의 부재는 곧 권력의 공백이 됩니다.

그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이타카에 모여들면서 오디세우스가 돌아가야 할 집 역시 또 하나의 전장이 됩니다.

이 구조가 흥미로운 이유는 트로이와 이타카가 서로 거울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는 다른 사람의 성을 무너뜨리고 전쟁에서 돌아옵니다. 그런데 자신이 없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집 안으로 들어와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 합니다.

전쟁에서 남의 집을 침범했던 영웅이 귀향한 뒤에는 자신의 집을 침범한 사람들과 마주해야 합니다.

신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인간 가까이 내려왔다

젠데이아가 연기하는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지켜보는 신적 존재입니다.

하지만 놀란은 신들의 세계를 인간 세계와 완전히 분리된 거대한 판타지 공간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원작에서 중요한 신들의 개입을 영화에서는 보다 제한적으로 사용하면서 인간의 선택과 죄책감, 운명에 무게를 둡니다.

그 결과 괴물과 신이 존재하는 이야기인데도 오디세우스의 고난은 이상할 만큼 인간적인 문제로 다가옵니다.

어떤 일이 신의 뜻인지, 운명인지, 자신의 잘못에서 시작된 것인지 명확하게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놀란에게 신화는 현실에서 멀어지기 위한 판타지가 아니라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죄와 운명을 이야기하기 위한 언어에 가깝습니다.

괴물보다 무서운 것은 오디세우스 자신의 선택일 수 있다

<오디세이>에는 신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여러 존재가 등장합니다.

키클롭스와 세이렌, 키르케와 칼립소를 비롯한 존재들은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계속 방해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모든 실패를 괴물이나 신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습니다.

오디세우스 역시 자존심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고, 자신의 지략을 지나치게 믿으며, 선택의 대가를 동료들과 함께 치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완벽한 영웅으로 남기 어렵습니다.

뛰어난 지휘관이면서 실수를 하는 인간이고, 가족에게 돌아가려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 때문에 귀향을 더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놀란판 오디세우스의 매력은 영웅이라서 실수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웅이라는 이름으로도 자신의 선택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왜 놀란은 신화를 실제 바다와 사막에서 찍었을까

<오디세이>의 제작 방식은 영화가 신화를 해석하는 방향과 연결됩니다.

촬영은 2025년 약 91일 동안 진행됐고 모로코, 그리스,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스코틀랜드와 미국 스튜디오 등을 오갔습니다.

모로코의 아이트 벤 하두는 트로이로 변했고,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의 해안과 동굴은 오디세우스가 신화적 존재와 마주하는 공간이 됐습니다.

이탈리아 파비냐나와 에올리에 제도에서는 실제 바다를 활용한 촬영이 이어졌고, 아이슬란드와 스코틀랜드의 거친 자연도 서로 다른 신화의 공간으로 사용됐습니다.

놀란이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단순히 배경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신화 속 인물이 실제 바람을 맞고, 실제 바다 위에 서고, 실제 바위와 모래 사이를 이동하게 만들면 3000년 된 이야기가 그림책 속 전설에서 물리적인 경험으로 바뀝니다.

괴물은 신화적이어도 그 괴물을 만나러 가는 길만큼은 실제 인간의 몸으로 견뎌야 하는 세계를 만든 것입니다.

172분 전체를 IMAX 필름으로 촬영한 이유

<오디세이>는 장편 극영화 최초로 전체 분량을 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놀란과 촬영감독 호이트 반 호이테마는 오래전부터 IMAX 15퍼포레이션 65mm 필름을 활용해왔지만, 이전 작품에서는 모든 장면을 이 카메라로 촬영하기 어려웠습니다.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소음이었습니다.

거대한 필름이 빠르게 움직이는 IMAX 카메라는 일반적인 대화 장면에서 동시녹음을 어렵게 만들 정도로 소음이 컸습니다.

<오디세이> 제작을 위해 더 작고 조용한 차세대 카메라와 동시녹음 기술이 개발되면서 가까운 거리의 인물 연기까지 IMAX 필름으로 담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이 기술적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화면이 커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거대한 바다와 산맥뿐 아니라 사람의 얼굴까지 같은 포맷으로 촬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결국 <오디세이>에서 IMAX가 확대하는 것은 신화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란>을 참고한 이유

놀란과 호이트 반 호이테마는 제작 과정에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료프>,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 그리고 레이 해리하우젠의 특수효과가 사용된 그리스 신화 영화들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들의 화면을 그대로 따라 하려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는 제한된 아날로그 기술로 거대한 시대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야심을, <란>에서는 가족과 전쟁이 결합된 대규모 서사의 힘을 참고했습니다.

반면 해리하우젠의 영화들은 오래전 영화가 신화 속 괴물과 인간을 어떻게 같은 화면 안에 존재하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계보입니다.

놀란의 방식은 그 전통을 현대적인 디지털 판타지로 지우기보다 실제 장소와 필름 촬영의 감각 안으로 다시 끌어오는 쪽에 가깝습니다.

비선형 구조가 신화보다 기억처럼 느껴지는 이유

놀란은 <오디세이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한 시간 순서로 펼쳐놓지 않습니다.

현재와 과거, 다른 인물의 시점과 오디세우스의 기억이 서로 이어지면서 이미 본 사건의 의미가 뒤늦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 방식은 놀란의 전작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오디세이>에서는 원작과도 잘 맞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역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떠나는 순간부터 모든 일을 순서대로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서 시작해 오디세우스가 지나온 일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과거를 복원합니다.

영화에서는 이 구조가 오디세우스의 심리와 결합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버렸는지 이해하려면 계속 과거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펜하이머와 오디세우스에게는 이상한 공통점이 있다

<오펜하이머>와 <오디세이>는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영화입니다.

하나는 20세기의 핵무기 개발을 다룬 역사극이고, 다른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를 다룹니다.

하지만 두 작품의 중심에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역사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뒤 그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오펜하이머에게 그것은 원자폭탄이고 오디세우스에게는 트로이 목마입니다.

둘 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 성공한 뒤에야 성공의 대가가 무엇인지 마주합니다.

놀란이 관심을 갖는 것은 천재가 어떻게 승리하는가보다 승리를 가능하게 한 자신의 선택과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직접 IMAX로 본 오디세이, 스케일보다 오래 남은 것은 허무함이었다

이 영화는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직접 관람했습니다.

첫 장면이 시작되고 화면이 시야를 채울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역시 크기였습니다. 실제 바다와 사막, 거대한 세트와 자연환경을 IMAX 필름으로 담아낸 화면은 단순히 배경을 구경한다는 느낌보다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감각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이걸 실제로 촬영했다니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더 오래 남은 것은 스펙터클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따라갈수록 이 이야기를 단순한 영웅담이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느낌이 강해졌습니다.

누가 완전히 옳고 누가 완전히 그른지를 쉽게 갈라주지 않고, 오디세우스 자신도 영웅과 가해자, 생존자의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모호함이 조금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 부분이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모험이 계속될수록 이상하게 허무함이 따라왔습니다.

괴물을 이겨도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살아남아도 잃어버린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목적지에 가까워진다고 지나온 시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신화 속 영웅의 위대한 모험을 보고 있는데, 정작 마음에 남는 것은 한 인간이 너무 많은 것을 겪은 뒤에도 정말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극장을 나선 뒤에도 장면보다 질문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이타카에 도착한다고 귀향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디세이>에서 이타카는 분명한 목적지입니다.

오디세우스는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를 건너고 수많은 시련을 견딥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정리하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빠집니다.

집에 도착하는 것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가 떠났던 시간 동안 페넬로페도 변했고 텔레마코스도 성장했습니다. 이타카의 권력 관계도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오디세우스 자신이 달라졌습니다.

전쟁 전의 남편과 아버지가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죽음, 죄책감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진짜 귀향은 배가 이타카 해안에 닿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돌아온 사람이 자신이 떠나기 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기다린 사람들 역시 그 변화한 사람과 다시 관계를 만들어야 비로소 귀향은 완성됩니다.

오디세우스는 왜 10년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했을까

신화적인 대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신의 분노와 폭풍이 있었고, 괴물과 유혹이 있었으며, 오디세우스 자신의 실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란의 <오디세이>를 보고 나면 조금 다른 대답도 가능해집니다.

어쩌면 오디세우스에게 필요했던 것은 이타카까지 가는 시간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끝낸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 무엇이 남았는지 마주하고, 자신이 살린 사람과 죽게 만든 사람을 기억하며, 자신도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0년의 항해는 영웅에게 내려진 단순한 벌이 아니라 전쟁에서 귀환하는 데 필요한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처럼 보입니다.

몸은 전쟁터를 떠날 수 있어도 마음까지 전쟁에서 돌아오는 데는 훨씬 긴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가장 거대한 것은 키클롭스도, 폭풍도, IMAX 화면도 아니었습니다.

전쟁을 끝내고도 끝나지 않은 한 인간의 귀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