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외면받던 소녀가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당한 일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런데 세상은 그를 '사악한 마녀'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영화 <위키드>는 이 모순에서 출발한다.
존 추 감독의 <위키드>(2024)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뮤지컬 영화다. 신시아 에리보가 엘파바를, 아리아나 그란데가 글린다를 연기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시즈대학교에서 만나 우정을 쌓고, 오즈의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면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의 핵심은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의 대결이 아니다.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결정하는 사회의 시선,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문,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 아래에는 2024년 영화 <위키드>의 주요 전개와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위키드 기본 정보와 원작
| 감독 | 존 추 |
| 개봉 연도 | 2024년 |
| 장르 | 판타지, 뮤지컬 |
| 주요 출연 | 신시아 에리보, 아리아나 그란데, 조나단 베일리, 양자경, 제프 골드블룸 |
| 원작 |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동명 소설 |
| 영화의 범위 | 뮤지컬 1막을 중심으로 구성한 첫 번째 영화 |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 다르다는 이유로 시작된 차별
신시아 에리보가 연기한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가족 안에서도 충분한 이해와 애정을 받지 못한다.
엘파바는 동생 네사로즈와 함께 시즈대학교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엘파바를 낯선 존재로 대하고, 그의 특별한 마법 능력보다 초록색 피부에 먼저 주목한다.
그런데 엘파바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숨기거나 적극적으로 인기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반응하고, 약한 존재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외면하지 못한다.
이 설정은 영화의 중요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람을 평가할 때 우리는 실제 행동을 보는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특징과 주변의 소문을 먼저 믿는가.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는 단순히 판타지 세계의 독특한 외형이 아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글린다의 인기와 엘파바의 고립, 두 사람은 왜 친구가 되었을까
아리아나 그란데가 연기한 글린다는 엘파바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밝고 화려한 외모와 사교적인 태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주변의 인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즈대학교에서 두 사람은 룸메이트가 되지만 처음부터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엘파바는 글린다의 가벼워 보이는 태도를 불편해하고, 글린다는 엘파바를 이해하지 못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지는 중요한 장소는 오즈더스트 무도회장이다. 글린다가 건넨 검은 모자를 쓰고 나타난 엘파바는 다른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엘파바가 혼자 춤을 추는 모습을 본 글린다는 자신이 한 행동을 돌아보고, 사람들 앞에서 엘파바와 함께 춤을 춘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의 우정은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는 행동으로 시작된다. 글린다는 처음으로 주변의 시선보다 엘파바의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택을 한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글린다는 엘파바에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엘파바는 글린다가 인기와 인정 외에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두 사람이 언제나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영화 후반부의 갈등은 바로 이 차이에서 발생한다.
말하는 동물들이 침묵하게 되는 오즈의 이상한 변화
<위키드>에서 엘파바가 마주하는 문제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차별만이 아니다. 오즈에서는 사람처럼 말하고 가르칠 수 있는 동물들이 점점 권리를 잃어 가고 있다.
시즈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딜라몬드 박사는 말을 하는 염소다. 그는 동물들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으며, 일부 동물은 말하는 능력까지 잃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엘파바는 이러한 상황에 분노한다. 특히 딜라몬드 박사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어린 사자가 우리에 갇힌 모습을 보면서, 오즈에서 벌어지는 일이 단순한 편견이 아니라 조직적인 억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엘파바는 피예로와 함께 갇혀 있던 새끼 사자를 풀어 준다. 이 행동은 그가 자신과 직접 관계없는 존재의 고통에도 반응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영화는 차별의 범위를 개인의 외모에서 사회 전체의 문제로 넓힌다. 누군가를 위험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는 일이 반복되면, 그 대상의 권리를 빼앗는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와 모리블 학장, 누가 사악한 마녀를 만들었을까
엘파바는 자신의 특별한 마법 능력을 인정받아 오즈의 마법사를 만날 기회를 얻는다. 그는 마법사가 오즈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에메랄드 시티에서 마법사를 만난 엘파바는 예상하지 못한 진실을 알게 된다. 마법사는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강력한 마법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모리블 학장과 함께 동물들을 억압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엘파바는 마법서 그리머리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이용당한다. 그가 주문을 외우자 마법사의 원숭이 경비병들에게 날개가 생기고, 마법사와 모리블은 그들을 감시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
자신의 힘이 억압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엘파바는 마법사의 편에 서기를 거부한다.
그러자 모리블은 엘파바를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고, 오즈의 사람들에게 그를 사악한 마녀라고 알린다. 엘파바가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지보다 권력자가 그를 어떻게 설명하는지가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 제목의 의미가 드러난다.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가 된 것은 갑자기 악한 행동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다. 권력자의 요구를 거부한 인물이 오히려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히는 과정을 영화는 보여준다.
분홍색과 초록색, 영화의 색채가 보여주는 두 인물의 차이
<위키드>에서 색채는 인물의 성격과 사회적 위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린다에게 자주 사용되는 분홍색은 화려함과 밝은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는 그가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만든다. 글린다가 자신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간다면, 엘파바는 타인이 부여한 이미지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검은 모자와 어두운 의상 역시 엘파바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연결된다. 처음에는 놀림의 대상이었던 모자가 나중에는 엘파바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처럼 영화는 같은 옷이나 색깔도 누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에메랄드 시티의 화려한 초록빛도 흥미롭다. 도시 전체는 초록색으로 빛나지만, 정작 초록색 피부를 가진 엘파바는 그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이 대비는 오즈의 화려한 겉모습과 내부의 모순을 생각하게 한다.
위키드 결말, 엘파바와 글린다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엘파바는 마법사와 모리블의 계획을 알게 된 뒤 그들의 요구를 거부한다. 마법서는 그가 가진 힘을 증명하는 물건이지만, 동시에 권력자들이 그 힘을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글린다는 엘파바를 따라가지만, 두 사람이 선택하려는 길은 다르다. 엘파바는 오즈의 권력에 맞서겠다고 결심하고, 글린다는 그와 함께 도망치는 대신 남는 쪽을 선택한다.
이때 글린다를 단순히 친구를 배신한 인물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는 엘파바를 걱정하고 그의 선택을 이해하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세계를 완전히 떠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반대로 엘파바는 더 이상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마법사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보다 잘못된 일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중요해진 것이다.
마지막에 엘파바는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모리블은 그를 사악한 마녀라고 알리지만, 엘파바는 자신을 규정하려는 권력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 길을 선택한다.
영화는 두 친구가 서로 다른 길을 택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이 결말은 엘파바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로 결정한 출발점에 가깝다.
Defying Gravity, 하늘을 나는 장면이 중요한 이유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Defying Gravity'는 <위키드>를 대표하는 뮤지컬 넘버다. 이 노래는 엘파바가 자신의 힘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순간에 등장한다.
엘파바에게 중력은 단순한 물리적 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편견, 권력자의 명령, 자신에게 정해진 역할처럼 그를 붙잡아 두었던 모든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엘파바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강력한 마법을 보여주는 볼거리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억누르던 기준에서 벗어나는 선언으로 읽힌다.
존 추 감독의 영화는 이 장면을 뮤지컬 무대보다 길고 극적인 탈출 과정으로 확장한다. 엘파바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위기를 겪고 다시 상승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힘을 받아들이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글린다와 헤어진 직후 노래가 이어진다는 점도 중요하다. 엘파바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친구와 같은 길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자유는 누구와도 갈등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과 두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에 가깝다.
오즈의 마법사와 위키드, 익숙한 동화를 다르게 읽는 방법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악한 서쪽 마녀로 알려진 인물에게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 작품이다.
익숙한 동화에서는 마녀가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위키드>는 그 인물이 왜 악역으로 알려졌는지, 사람들이 믿는 이야기가 누구의 시선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본다.
이러한 접근은 악당에게 단순히 불쌍한 과거를 만들어 주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영화는 엘파바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와 오즈의 사람들이 그에 대해 무엇을 믿는지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다.
이 차이는 현실에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한 사람의 행동보다 외모와 소문이 먼저 알려지거나, 힘을 가진 사람이 특정 인물을 위험한 존재로 규정할 때 우리는 그 판단을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는가.
영화는 그 질문을 화려한 노래와 판타지의 형식으로 전달한다.
2024년 위키드의 결말은 전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한 가지 구분할 점은 2024년 영화 <위키드>가 원작 뮤지컬의 전체 이야기를 모두 담은 작품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뮤지컬의 1막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엘파바가 마법사에게 맞서기로 결심하고 글린다와 헤어지는 장면에서 마무리된다. 따라서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까지 이 영화 한 편의 결말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2025년 공개된 후속작 <위키드: 포 굿>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2024년 작품만 놓고 보더라도 엘파바가 왜 사악한 마녀로 불리게 되었는지, 글린다가 왜 그와 다른 선택을 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두 작품을 구분해서 보면 2024년 영화의 마지막 비행은 모든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갈등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라는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착한 마녀와 사악한 마녀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위키드>에서 엘파바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고, 권력자의 요구를 거부하며,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이야기에 순응하지 않는다.
반면 글린다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능력과 옳은 선택을 하는 능력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
두 사람의 차이를 단순히 엘파바는 선하고 글린다는 나쁘다고 정리하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엘파바는 신념을 지키는 선택을 하고, 글린다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서로 다른 선택에는 각자의 두려움과 가치관이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로 불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가 잘못된 일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잘못된 일에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영화는 선과 악이라는 익숙한 구분을 뒤집는다.
결국 <위키드>는 누가 착한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쉽게 답하는 영화가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 무엇을 근거로 삼는지, 그리고 다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질 때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엘파바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마지막 장면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할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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