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소녀의 팔에 새겨진 문신 하나가 사람들의 태도를 바꾼다. 실제로 병에 걸렸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친구들은 먼저 거리를 두고, 주변의 시선은 알파를 감염된 사람처럼 바라보기 시작한다.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알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어쩌면 몸을 굳게 만드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검사 결과보다 빠르게 퍼지는 사람들의 공포다.
<로우>에서 식욕과 욕망을, <티탄>에서 신체와 정체성의 경계를 밀어붙였던 뒤쿠르노는 이번에도 몸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그러나 <알파>에서 몸은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피와 문신, 감염의 흔적은 다른 사람들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표지가 된다.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한 소녀가 어떻게 공동체의 바깥으로 밀려나는지, 그리고 질병에 대한 공포가 한 가족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따라가는 작품이다.

영화 알파 기본 정보
| 작품명 | 알파 (Alpha) |
| 감독 / 각본 | 줄리아 뒤쿠르노 |
| 주요 출연 | 멜리사 보로스, 골쉬프테 파라하니, 타하르 라힘, 엠마 매키, 피네건 올드필드 |
| 제작국가 | 프랑스, 벨기에 |
| 장르 | 드라마, 바디 호러 |
| 상영시간 | 128분 |
| 국내 개봉 | 2026년 9월 30일 |
|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 수입·배급 | 찬란 |
| 주요 이력 | 제78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알파는 감염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왜 모두가 피하기 시작했을까
멜리사 보로스가 연기하는 알파는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13세 소녀다. 어느 날 파티를 다녀온 알파는 팔에 'A' 모양의 문신을 새긴 채 집으로 돌아온다. 평범한 사춘기의 일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알파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피를 통해 전염되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문제는 문신을 새기는 데 사용된 바늘이 안전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인 엄마는 딸이 감염됐을 가능성을 걱정하고, 알파 역시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사회는 검사 결과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 알려져도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학교에서는 알파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친구들은 그를 피하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다루는 두 종류의 감염이 갈라진다. 하나는 피를 통해 몸으로 들어오는 질병이고, 다른 하나는 소문과 두려움을 통해 사람들 사이로 퍼지는 공포다. 첫 번째 감염은 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하지만 두 번째 감염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시작된다.
몸을 돌처럼 굳게 만드는 질병은 무엇을 의미할까
<알파>에 등장하는 질병은 실제로 존재하는 특정 감염병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다. 영화는 혈액을 통해 전염되며 감염자의 몸을 점차 굳게 만드는 가상의 질병을 설정한다.
뒤쿠르노는 이 질병을 현실적인 의학 드라마의 방식으로 설명하기보다 바디 호러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병이 진행될수록 인간의 살아 있는 피부와 몸은 점차 석화된 조각상처럼 변해간다. 신체가 변화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설정이 중요한 이유는 감염자의 몸 자체가 사회적인 표지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환자의 이름이나 삶을 보기 전에 먼저 변화한 몸을 본다. 한 인간이 아니라 '감염자'라는 범주가 그 사람보다 앞에 놓인다.
그래서 <알파>의 신체 변화는 단순히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한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병에 걸린 사람을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그 시선이 환자를 얼마나 빠르게 고립시키는지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든다.
1980~1990년대와 AIDS의 기억
<알파>의 이야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라는 두 시간대를 오간다. 영화 속 질병은 가상이지만 그 시대를 선택한 이유는 현실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줄리아 뒤쿠르노는 HIV가 등장하고 AIDS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던 시기를 어린 시절 경험했다. 당시 질병 자체에 대한 두려움뿐 아니라 감염된 사람들을 향한 수치심과 낙인, 사회가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분위기가 그의 기억에 남았다.
영화는 AIDS를 직접 재현하는 대신 가상의 질병을 만든다. 특정 환자의 실제 경험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당시 사회를 뒤덮었던 감정을 공포영화와 가족 드라마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그 결과 <알파>에서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의 정확한 기원이나 치료법을 알아내는 과정이 아니다. 질병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기 시작하는지, 공포가 어떤 편견을 만들고 그 편견이 다음 세대에 어떻게 남는지가 더 중요하다.
알파의 엄마는 왜 딸의 문신을 보고 누구보다 두려워할까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연기하는 알파의 엄마는 의사다. 질병을 모르는 사람이 막연한 공포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감염의 위험을 가까이에서 경험해온 의료인이 자신의 딸을 걱정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에게 알파의 문신은 단순한 사춘기의 반항이 아니다.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바늘과 피의 접촉을 의미할 수 있고, 그 순간 과거에 경험했던 공포가 현재의 딸에게 이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엄마의 두려움에는 의사로서 알고 있는 의학적 위험과 가족을 잃을지 모른다는 개인적인 공포가 동시에 들어 있다. 환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직업적 위치와 자신의 딸을 보호하고 싶은 감정이 충돌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모녀 관계는 감염병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문제를 한 가족의 이야기로 좁혀 보여주는 통로가 된다. 사회 전체의 공포가 결국 한 사람의 집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타하르 라힘의 아민은 알파에게 미래일까, 과거의 기억일까
타하르 라힘이 연기하는 아민은 알파의 삼촌이자 영화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이다. 그는 이미 질병에 감염된 인물로, 알파가 앞으로 마주할지도 모르는 공포를 몸으로 보여준다.
아민의 존재 때문에 알파의 감염 가능성은 단순한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알파와 엄마에게 질병은 뉴스나 소문 속에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가족 안에 들어와 있는 현실이다.
타하르 라힘은 아민의 변화한 몸을 표현하기 위해 큰 폭의 체중 감량을 했다. 뒤쿠르노의 영화에서 배우의 몸은 단순히 캐릭터를 담는 그릇으로 머물지 않는다. 몸의 변화 자체가 인물이 겪은 시간과 고통을 전달하는 이미지가 된다.
특히 아민과 알파를 함께 놓으면 영화의 시간 구조가 더욱 중요해진다. 알파가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현재의 공포와 가족이 이미 겪어온 과거의 상처가 겹치면서, 질병은 한 세대에서 끝난 사건이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전달되는 기억처럼 작동한다.
줄리아 뒤쿠르노는 왜 계속 인간의 몸으로 이야기할까
줄리아 뒤쿠르노의 장편영화에서 몸은 언제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로우>에서는 식욕과 욕망이 신체를 통해 폭발했고, <티탄>에서는 인간과 기계, 성별과 정체성의 경계가 몸을 통해 흔들렸다.
<알파> 역시 신체의 변화를 다루지만 앞선 작품과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한 사람의 몸에 나타난 변화가 그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태도까지 바꾼다는 점이 더욱 중요해진다.
몸은 가장 개인적인 영역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상처와 문신, 질병의 흔적이 드러나는 순간 사람들은 그 몸을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을 판단한다.
뒤쿠르노가 계속 신체로 돌아오는 이유도 이 지점에서 읽을 수 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욕망과 두려움, 수치심과 사랑을 몸의 변화로 바꾸면 관객은 그것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눈앞의 이미지로 마주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이유
<알파>는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만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의 기억과 이미지가 겹치면서 가족이 경험한 과거와 알파가 살아가는 현재의 경계가 흔들린다.
이런 구조는 처음에는 인물 관계와 시간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를 생각하면 과거와 현재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 이유도 보인다. 질병에 대한 공포는 사건이 끝났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남기 때문이다.
엄마가 경험했던 과거는 알파가 문신을 하고 돌아오는 순간 다시 현재가 된다. 한 세대가 겪었던 공포가 다음 세대의 몸을 통해 되살아나는 것이다.
따라서 비선형적인 시간은 단순히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형식적 장치라기보다 공포와 트라우마가 전달되는 방식을 표현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과거의 두려움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의 시간 역시 깔끔하게 과거와 현재로 나뉘지 않는다.
루벤 임펜스의 촬영과 굳어가는 몸
촬영은 <티탄>에서도 줄리아 뒤쿠르노와 함께했던 루벤 임펜스가 맡았다. <알파>는 2025년 제78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루벤 임펜스와 음향 믹서 스테판 티에보는 이 작품의 이미지와 사운드 작업으로 CST 아티스트-테크니션상을 받았다.
이는 <알파>에서 시각과 소리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요한 일부라는 점과 연결된다. 사람의 몸이 점차 석화되는 이미지는 질병의 진행을 보여주는 동시에 살아 있는 인간이 사회에서 하나의 대상으로 굳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몸을 바라보는 카메라 역시 중요하다. 뒤쿠르노의 영화는 변화한 신체를 단순한 괴물처럼 전시하기보다 그 몸 안에 여전히 감정과 관계를 가진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알파>의 바디 호러는 얼마나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는가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인가와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질병보다 먼저 사람을 고립시키는 것
<알파>의 출발점은 의외로 작다. 한 소녀가 파티에서 문신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혈액을 통해 전염되는 질병에 대한 공포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그 작은 흔적 하나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다.
알파가 실제로 감염됐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친구들은 그를 다르게 바라본다. 이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바이러스가 몸속에서 퍼지는 과정이 아니라 의심이 공동체 안에서 퍼지는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알파>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감염 여부를 모르는 사람을 이미 감염자처럼 대한다면 그 사람을 사회 밖으로 밀어낸 것은 질병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공포일까.
뒤쿠르노는 가상의 질병을 통해 이 질문을 특정 시대에만 묶어두지 않는다. 질병의 형태가 달라져도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몸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에 이름을 붙인 뒤 거리를 둘 수 있다.
그래서 <알파>는 바이러스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공포가 전달되는 방식에 관한 영화로 볼 수 있다. 몸을 감염시키는 병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두려움 가운데 무엇이 더 오래 남는지 묻는다는 점에서, 2026년 9월 30일 국내 개봉하는 이 작품은 줄리아 뒤쿠르노가 다시 한번 '몸'을 통해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