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10년 만에 다시 가까워지는 일과 자신이 만든 영화를 가족에게 보여주는 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홍상수 감독의 35번째 장편 <눈 둘 데가 없네>는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어머니를 찾아 제주도로 향한 딸 상희를 따라가면서 두 가지 거리를 동시에 바라본다. 하나는 가족 사이에 생긴 시간의 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만든 것을 가까운 사람에게 보여줄 때 생기는 마음의 거리다.
상희는 과자 수입회사에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아주 짧은 영화를 혼자 만든다. 어머니의 새 남편 역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고, 그의 딸은 이제 막 그림을 시작했다. 창작하는 사람들이 한 가족 안에 모이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쉽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눈 둘 데가 없네>는 2박 3일 동안 오가는 대화와 어색한 만남을 통해 가족에게 이해받고 싶으면서도 함부로 평가받고 싶지는 않은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영화 눈 둘 데가 없네 기본 정보
| 작품명 | 눈 둘 데가 없네 |
| 영문 제목 | Nowhere to Lay My Eyes |
| 감독 | 홍상수 |
| 각본·촬영·편집·음악 | 홍상수 |
| 제작 | 홍상수 |
| 제작실장 | 김민희 |
| 출연 | 김민희, 최명길, 권해효, 신석호, 박미소 |
| 국내 개봉 | 2026년 10월 21일 |
| 장르 | 드라마 |
| 상영시간 | 72분 |
|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 제작 | 영화제작전원사 |
| 국내 배급 |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
| 주요 수상 | 제79회 로카르노영화제 감독상, 최우수연기상,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 |
상희는 왜 10년 만에 어머니를 찾아갔을까
김민희가 연기하는 상희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뒤 대부분의 시간을 조부모와 함께 보냈다. 어머니와 완전히 관계가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만난 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상희는 남동생과 함께 제주도에 정착한 어머니를 찾아간다. 오랜 세월 떨어져 있던 가족이 다시 만난다고 해서 영화가 곧바로 화해나 갈등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 사이에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어색함이 먼저 자리한다.
10년은 가족이 서로 모르는 사람이 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상희가 알고 있던 어머니의 삶도 크게 달라져 있다. 어머니는 제주에서 음식점을 운영해 성공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재혼한 남편과 함께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상희가 찾아가는 것은 그래서 과거의 어머니가 아니다. 자신이 모르는 10년을 살아온 현재의 어머니다. 영화의 첫 번째 긴장은 바로 이 시간의 공백에서 시작된다.
김민희의 상희는 어떤 사람인가
상희는 전업 영화감독이 아니다. 과자 수입회사에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혼자 짧은 영화를 만든다.
이 설정은 상희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영화 만들기는 그의 직업적 성공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자신의 시간을 사용해 계속하고 있는 개인적인 창작에 가깝다.
그래서 상희가 가족에게 자신을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문제와 창작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겹친다. 직업을 묻는다면 회사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영화를 만드는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김민희는 이런 상희의 복잡한 감정을 큰 사건보다 표정과 침묵, 상대의 말을 듣는 순간의 미세한 변화로 표현한다. 제79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것도 바로 이 역할이다.
최명길이 연기하는 어머니는 왜 딸에게 충고할까
최명길이 연기하는 어머니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딸을 반가워하면서도 딸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는다. 상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도움이 될 것 같은 충고도 건넨다.
가족의 충고가 어려운 이유는 대개 악의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를 걱정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이 평가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특히 10년이라는 공백이 있는 상희와 어머니에게 이 문제는 더 복잡하다. 어머니가 알고 있는 딸과 현재의 상희 사이에는 이미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빠르게 정리하기보다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관심과 간섭, 칭찬과 평가가 얼마나 쉽게 뒤섞이는지를 바라본다.
권해효의 새아버지는 왜 ‘초분’을 찍고 있을까
권해효가 연기하는 어머니의 새 남편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가 제주에서 촬영하고 있는 대상은 '초분'이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일정 기간 지상에 두었다가 이후 뼈를 수습해 다시 장례를 치르는 전통적인 장례 방식과 관련돼 있다. 죽은 사람을 곧바로 완전히 떠나보내지 않고 일정한 시간을 거친다는 점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 하나의 중간 단계를 만든다.
공개된 줄거리만 놓고 보면 영화가 초분을 상희의 가족사와 직접적으로 어떻게 연결하는지는 개봉 전 단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이 다시 만나고, 나이 듦과 가족 돌봄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는 작품 안에서 죽음과 시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인물이 함께 있다는 설정은 눈여겨볼 만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새아버지 역시 카메라로 무언가를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상희도 영화를 만들지만 두 사람에게 영화가 갖는 의미와 작업 방식은 같지 않다.
박미소의 인물과 상희는 왜 가까워질까
박미소가 연기하는 인물은 새아버지가 데리고 온 딸이다.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한 사람으로, 상희와는 혈연으로 직접 이어지지 않은 새로운 가족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상희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어머니보다 이 새로운 가족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무언가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상희와 그림을 시작한 젊은 여성 사이에는 세대 차이가 있지만 창작을 시작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데서 생기는 불안은 공유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고,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끼리는 예상하지 못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상희가 제주에서 만나는 새로운 가족 관계 가운데 이 인물이 중요한 이유다.
신석호가 연기하는 남동생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신석호가 연기하는 상희의 남동생은 누나와 함께 제주도로 향한다. 같은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고 같은 어머니를 만나러 가지만 두 남매가 가족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인물이 중요한 이유는 상희가 가족의 과거를 혼자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가정에서 자란 형제도 부모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다를 수 있다.
상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더라도 남동생의 존재는 한 가족의 과거에 단 하나의 시선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박 3일 동안 가족은 무엇을 알게 될까
상희와 남동생은 제주에서 어머니와 새 가족을 만나 2박 3일을 함께 보낸다. 10년이라는 공백을 메우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영화 역시 그 시간을 거대한 사건으로 채우지 않는다. 밥을 먹고 집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사실이 하나씩 나온다. 누군가는 충고하고 누군가는 칭찬한다.
문제는 가족 사이의 말이 언제나 말한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뜻에서 한 칭찬이 상대에게는 값싸게 들릴 수도 있고, 걱정해서 건넨 충고가 상대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는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홍상수 감독은 이런 어긋남을 거대한 가족 갈등으로 확대하기보다 사람들이 같은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는 순간 속에 남겨둔다. 가족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
왜 이 가족에는 창작하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을까
<눈 둘 데가 없네>에서 흥미로운 설정 가운데 하나는 가족 주변에 창작하는 사람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상희는 짧은 영화를 만든다. 새아버지는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새아버지의 딸은 그림을 시작한다. 영화, 다큐멘터리,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세 사람 모두 자신이 본 것을 어떤 형태로 다시 만들어낸다.
창작은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일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무엇을 바라볼지, 그것을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제목인 '눈 둘 데가 없네' 역시 이런 관계 속에서 여러 방향으로 읽어볼 수 있다. 가족에게 어디까지 시선을 둘 것인지, 다른 사람의 삶을 얼마나 들여다볼 수 있는지, 자신이 만든 것을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모두 '본다'는 행위와 연결된다.
상희는 왜 가족에게 자신의 영화를 먼저 보여주지 않을까
공식 시놉시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2박 3일의 마지막에 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아침, 다른 가족들이 상희가 만든 영화 가운데 하나를 상희 몰래 보고 있다.
상희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틀어놓고 설명하는 장면이 아니라 가족들이 창작자의 부재 속에서 영화를 본다는 설정이다.
자신이 만든 것을 낯선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과 가족에게 보여주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낯선 사람은 작품만 보지만 가족은 작품을 만든 사람의 과거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영화를 본다면 상희는 단순히 작품에 대한 평가만 받는 것이 아니다. 가족들은 그 영화에서 상희의 삶과 생각을 찾아내려고 할 수도 있다. 상희가 작품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이유를 단순한 부끄러움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이 장면은 개봉 전 공개된 시놉시스의 마지막이므로, 가족들이 영화를 본 뒤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까지 미리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가족이 상희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가 만든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상희를 바라보게 된다는 상황 자체다.
로카르노에서 세 개의 상을 받은 작품
<눈 둘 데가 없네>는 2026년 제79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홍상수 감독은 감독상을 받았고 상희를 연기한 김민희는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작품에는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도 돌아갔다.
홍상수 감독과 로카르노영화제의 인연도 길다. <우리 선희>로 감독상을 받았고,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최고상인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 <강변호텔>에서는 기주봉이 연기상을, <수유천>에서는 김민희가 연기상을 받았다.
<눈 둘 데가 없네>는 홍상수 감독의 다섯 번째 로카르노 국제경쟁 초청작이며, 이번에도 감독과 배우 모두 수상으로 이어졌다.
홍상수의 35번째 영화에서 달라지는 질문
홍상수 영화에서 영화감독이나 배우, 작가처럼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술자리와 식사, 우연한 만남과 반복되는 대화 역시 오랫동안 이어진 그의 영화적 언어다.
하지만 <눈 둘 데가 없네>에서는 창작의 문제가 가족 돌봄과 연결된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상희는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어머니의 딸이다.
자신의 삶과 창작을 위해 가족에게서 거리를 두는 것과 나이 들어가는 부모 곁에 있어야 한다는 책임 사이에는 쉽게 정리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어머니가 원하는 딸의 모습과 상희가 선택한 삶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둘 중 한쪽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 영화가 가족의 재회를 단순한 화해의 이야기로 만들지 않는 이유다.
눈 둘 데가 없다는 말은 누구의 마음일까
제목 <눈 둘 데가 없네>는 어딘가 불편한 상황에서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10년 만에 만난 가족과 2박 3일을 보내는 상희에게도 어울리는 표현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 카메라와 그림, 짧은 영화가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다른 의미도 생긴다. 이 작품에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그것을 이미지로 옮기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새아버지는 죽음과 관련된 풍습을 카메라에 담고, 그의 딸은 그림을 시작하며, 상희는 혼자 짧은 영화를 만든다. 모두 어디에 자신의 눈을 둘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상희가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 앞에서는 자신의 영화를 쉽게 보여주지 못한다. 가족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의식하기 시작하는 순간,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의 위치가 뒤집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눈 둘 데가 없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가장 편하게 보여줄 수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과거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희가 제주에서 보내는 2박 3일은 10년의 공백을 완전히 메우는 시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대화를 통해 몰랐던 상희를 조금씩 만나고, 마지막에는 상희가 만든 영화를 통해 말로 설명되지 않았던 또 다른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눈 둘 데가 없네>는 오랫동안 헤어진 모녀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을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에 관한 영화로 읽어볼 수 있다. 가족을 바라보는 상희의 시선과 상희의 영화를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이 서로 교차하는 순간, 제목의 '눈'도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